타인능해

2023. 2. 11. 14:20조운 담임목사님 칼럼

- 조 운 목사/대영교회·울산노회 부노회장·제자훈련 국제칼넷(CAL-NET)이사&부대표


▲ 조 운 목사

조선 영조 때 무과에 급제해서 낙안 군수를 지냈던 류이주라는 분의 이야기이다. 류이주는 고향인 전남 구례군에 낙향해서 아흔 아홉 칸의 집을 짓고 그 이름을 <운조루> 즉 구름과 새가 지치면 찾아오는 집이라 명했습니다. 이 집은 조선 후기 품격 있는 사대부 집의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집이다. 그러나 이 집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집 곳간에 자리 잡은 쌀뒤주 때문이다. 쌀 세 가마니는 족히 들어갈 정도의 거대한 쌀뒤주인데, 수해를 입거나 흉년이 들어서 사람들이 굶주리면 류이주는 이 뒤주에 커다랗게 ‘타인능해(他人能解) 즉 ‘ 이 집 사람이 아니어도 이 뒤주를 열 수 있다’고 써 붙여 놓았다. 가난한 이들이 마음 편안하게 가져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처음 곳간을 열었을 때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뒤주를 둘러싼 몸싸움도 치열했다. 언제 뒤주의 쌀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쌀은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채워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언제든지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고, 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남겨두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쌀뒤주가 있어서 놀고먹는 게으른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고 서로 작은 것이라도 나누기 시작하면서 마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타인능해의 전통은 계속되었다.

▲ 사랑의교회목회자협의회(故 옥한흠 목사 당시 사랑의교회 부교역자 모임), 겨울 수양회(2.6~8)

그 뒤 이 전통은 경주 최부잣집으로 이어졌다. 최부잣집에 가면 가장 인상적이게 봐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구멍 뒤주’이다. 어려운 사람들이 손을 집어넣어 잡히는 만큼의 쌀을 가져가도록 쌀뒤주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부잣집에서는 1년 수확이 무려 쌀만 3천 석이었는데, 1천 석은 자기 집을 위해서 쓰고, 1천 석은 손님을 위해서 베풀고, 나머지 1천 석은 주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또 흉년 시에는 빈민을 구제하고 급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고 불가피하게 돈 갚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과감하게 그들이 담보로 준 토지 대장이나 집문서를 태워 빚을 탕감해주는 등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극진히 배려해주었다고 한다.

▲ 조 운 목사(뒷줄 다섯 번째), 정원영 사모(앞줄 맨 우측)

조루 사람들이나 경주 최부잣집이 세상의 존경을 받은 것은 그들이 ‘가진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나눈 것’ 때문이었다. 이제 설날도 지나고 정월대보름도 지나고 본격적인 새해가 되었다. 2023년 계묘년에는 자신을 위한 설계에서만 멈추지 말고 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도 함께 설계하면 좋겠다.

나눔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작은 나눔이 어떤 때는 좌절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의욕과 소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가진 것’이 아니라 ‘나눈 것’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며,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 조 운 목사


◆편집자 주=조 운 목사는 부산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85회)을 졸업하고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를 도와 부교역자로 14년 사역 후 울산 대영교회 담임목사로 21년째 사역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현재 제자훈련 국제칼넷(CAL-NET)이사 및 부대표, OM선교회와 아릴락 성경번역선교회 이사, 그리고 WEC선교회 이사와 복음과도시 이사,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 이사, 울산노회 부노회장 등으로 섬기고 있다.

조 운 목사 dav11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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