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목사의 희망레터 "강도와 신경통"

2019. 4. 7. 09:14희망레터

어느날 한 가정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강도는 잠자던 부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눈을 부라리며 위협적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손들어! 우물쭈물하면 찔러 버릴 거야!”

그런데 남편은 한 손만 번쩍 들었습니다. 강도는 그걸 보고 당장이라도 찌를 듯이 화가 난 목소리로 다그쳤습니다. 

“실은 제가 왼쪽 어깨에 신경통이 있어서 이 쪽 손은 들 수가 없소이다”

그러자 강도는 웬일인지 표정이 조금 누그러져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경통이라고? 사실은 나도 신경통이 있는데....”

그때부터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강도는 신경통이라는 공통분모를 놓고

남편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신경통의 증세가 어떻다느니, 이렇게 치료했더니 좋다느니..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점점 이야기꽃이 피어나면서 방안에는 온기마저 감돌았습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주방에 나가 커피를 끓여 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강도는 가해자가 아니었고, 남편은 더 이상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잠시 후 강도는 남편에게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하고는

“빨리 잘 치료해서 건강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 헨리의 소설 <강도와 신경통>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강도와 남편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요? 

상식적으로 따지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신경통’이라는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서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공감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보다는 

남을 비판하려고 하는 모습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무척 범하기 쉬운 과오가 남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특히 비판을 하고도 아무런 도덕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자기 이야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비판을 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2절)

 

남을 비판하면 단순히 그 비판이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 내 삶에 돌아오게 됩니다. 

비판은 부메랑과 같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되로 주고 말도 아니고 가마니도 아니고 톤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더 낮추고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관대한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비판대신 이해와 관용의 사람이 되길 소원하며... 

여러분을 사랑하는 조운 목사 드림